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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우리는 (자기혐오, 열등감, 비교심리)

by dailyinfo-lab 2026. 6. 9.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드라마 하나를 보면서 제가 가장 싫어했던 시절의 제 모습을 이렇게 선명하게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해 우리는》은 로맨스 드라마지만, 저한테는 자기 자신을 미워했던 기억을 꺼내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자기혐오는 생각보다 조용하게 찾아옵니다.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성공이 그냥 부럽지 않고, 뭔가 불쾌하게 느껴지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건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회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과 닿아 있습니다. 여기서 사회 비교 이론이란, 사람이 자신의 능력이나 의견을 평가할 때 절대적 기준보다 주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판단하려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1954년에 제안한 개념인데, 제 그 시절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정확한 말이 없더라고요.

그때 저는 잘한 일은 기억에 금방 흘려보내고, 실수한 일은 몇 달씩 붙들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얼마나 소모적인 방식이었는지 알겠지만, 그 안에 있을 때는 그게 정상처럼 느껴졌습니다.

《그해 우리는》의 구연수가 딱 그랬습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단단해 보이는 인물인데, 사실 내면에는 자신의 가난과 환경에서 비롯된 뿌리 깊은 열등감이 있었습니다. 열등감(inferiority complex)이란 자신이 타인보다 부족하다는 감정이 무의식적으로 행동과 대인관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연수가 웅이를 먼저 밀어낸 것도, 따지고 보면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자기 확신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을 겁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저는 그 시절 스스로를 미워했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그건 미움이라기보다는 지속적인 자기 평가 절하에 가까웠습니다.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실수에 저만 혼자 몇 주씩 괴로워했고, 정작 누군가 제 장점을 이야기해주면 그게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상태가 오래되면 결국 자신도 모르게 기회를 회피하기 시작합니다.

드라마 속 연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랑스 이직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 반응이 거절이었던 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좋은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리 없다는 무의식적 믿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 모습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의 심리 건강 실태를 보면,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이 낮은 집단일수록 우울 증상과 대인관계 회피 경향이 유의미하게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여기서 자기 효능감이란 자신이 특정 상황에서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믿음을 뜻하며, 반두라(Bandura)가 제안한 개념입니다. 연수의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왜 남들과 다른 속도로 사는 것을 불안해할까

저도 처음엔 그 불안이 제 문제인 줄 알았습니다. 주변보다 뭔가 늦는 것 같다는 느낌, 취업이든 관계든 자꾸 한 박자 뒤처지는 기분. 그런데 그게 저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오히려 더 무서워졌습니다. 이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회학에서는 이를 정상화 규범(normalization norm)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정상화 규범이란, 사회가 특정 연령대에 이뤄야 할 성취 기준을 암묵적으로 설정하고, 그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을 '지연된' 혹은 '실패한' 것으로 분류하는 집단적 기제를 의미합니다. 문제는 이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음에도 마치 객관적 사실처럼 통용된다는 점입니다.

드라마 속 웅이와 연수가 10년 전 다큐에서 나눈 이야기를 보면 이 구조가 잘 드러납니다. "10년 후의 모습"을 물었을 때 둘의 대답은 전혀 달랐고, 어린 시절부터 사회가 기대하는 '성공한 삶'의 이미지가 이미 각자에게 다르게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그 기대치 자체가 이미 비교를 만들어내는 씨앗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불안을 가장 키우는 건 정보 과잉입니다. SNS는 타인의 성취를 실시간으로 피드에 쏟아냅니다. 이게 상향 비교(upward comparison)를 구조적으로 강제합니다. 상향 비교란 자신보다 더 잘 나가는 대상을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동기 부여보다는 무력감이나 자기 비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SNS 사용 빈도와 사회 비교 심리, 그리고 우울감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국내 연구에서도, SNS를 자주 사용할수록 사회 비교 경향이 높아지고 자존감 지표가 낮아지는 경향이 관찰되었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드라마 속 인물들이 공감을 얻는 이유가 단순히 이야기가 잘 만들어져서만은 아닌 겁니다.

《그해 우리는》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웅이가 연수에게 "나는 네가 뭘 하든 다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는 대목이었습니다. 그 말이 단순한 로맨스 대사로 들리지 않았던 건, 결국 그게 '나는 너의 속도를 탓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읽혔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내 페이스를 존중해준다는 경험이 얼마나 낯선 건지, 그 장면에서 새삼 느꼈습니다.

드라마 속 두 사람이 다시 만나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장은 빠른 게 아니라 방향이 맞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을 찾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이렇게 오래 생각하게 될 줄 몰랐지만, 돌이켜 보니 그럴 만했습니다. 저한테 이 드라마는 로코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였습니다. 아직 스스로를 미워하는 시간 안에 있는 분이라면, 천천히 봐도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뭔가를 해결해주진 않더라도, 적어도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건 알게 될 테니까요.


참고: https://youtu.be/MlJnHIj9Axg?si=acbowtsiDQ_pXw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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