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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틀렸단 걸 보여줄께" 혼자 귀마개를 꽂았던 나와 드라마 <약한 영웅>

by dailyinfo-lab 2026. 6. 15.

학창 시절 점심시간이 두려웠던 적이 있습니다.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는 그 짧은 복도가 그렇게 멀게 느껴질 수 없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참으면 지나가겠지 싶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드라마 <약한영웅 Class 1>을 보면서 그 시절 기억이 불쑥 올라왔고, 동시에 불편한 질문 하나가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상처받은 사람은 왜 때로 더 깊은 상처를 만들어내는가.

귀마개 하나로 버텨낸 날들, 그리고 드라마가 보여준 학교의 민낯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드라마를 틀기 전까지만 해도 그냥 통쾌한 복수극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 연시은(박지훈 분)이 교실 구석에서 혼자 숨을 죽이고 앉아있는 장면을 보는 순간, 심장 어딘가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도 딱 저랬거든요.

학교에서 은근한 무시와 소외는 눈에 보이는 폭력보다 더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때린 것도 아닌데, 누군가가 저를 때린 것도 아닌데, 그냥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그 공기가 어린 저를 조금씩 갉아먹었습니다. 무서움이 극에 달했던 어느 날, 저는 귀마개를 사서 점심시간마다 귀가 아프도록 깊이 꽂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의 웅성거림, 비웃음처럼 들리는 소리들을 내 세계 안으로 들이지 않겠다는 저만의 선전포고였습니다.

시은이 역시 뛰어난 두뇌와 주변의 사물을 조합한 변칙 전술로 자신을 지켜냅니다. 여기서 변칙 전술이란 규칙이나 힘의 논리를 따르지 않고,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국면을 뒤집는 전략을 의미합니다. 피지컬이 아니라 인지적 우위로 싸우는 것이죠. 그 장면들이 유독 통쾌하게 다가왔던 건, 아마 저도 귀마개라는 저만의 변칙 전술로 버텼던 사람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실제로 청소년 학교폭력 피해 경험은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합니다. 2023년 교육부가 발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의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은 1.9%로, 피해 유형 중 언어폭력과 집단 따돌림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습니다(출처: 교육부). 수치로 보면 작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 안에 있던 한 명 한 명에게 그것은 숫자가 아니라 매일의 생존이었습니다.

드라마가 잘 포착한 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학교폭력을 둘러싼 방관 구조, 즉 피해자가 고립되어도 어른들과 주변 아이들이 침묵하는 메커니즘이 얼마나 일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날것 그대로 보여줍니다. 방관 구조란 직접적인 가해 행위 없이 상황을 묵인함으로써 폭력이 유지되도록 돕는 집단적 행동 양식을 뜻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누군가 한 명만 다가왔어도 달랐을 텐데 싶은 그 빈자리가 참 컸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 오범석이 남긴 불편한 질문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걸린 인물은 오범석(홍경 분)이었습니다. 처음 등장했을 때 그는 분명히 피해자였습니다. 가정 폭력과 학교 내 괴롭힘이라는 이중의 상처를 짊어지고 있었고,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드라마 속 범석의 궤적이 불편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그가 처음으로 진짜 친구를 만나고 보호받는 경험을 했음에도 결국 배신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수호의 강함을 부러워하고, 시은의 뛰어남을 견디지 못한 범석은 자신을 가장 아껴준 사람들을 무너뜨리는 쪽으로 방향을 틉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이 당했던 것보다 훨씬 잔인한 폭력의 가해자가 됩니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단순한 권선징악을 넘어섭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피해자가해자 전이 현상, 즉 피해 경험을 내면화하지 못하고 그것을 타인에게 되돌려 주는 심리적 패턴이 범석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피해자가해자 전이란 자신이 받은 상처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때, 더 약한 대상에게 동일하거나 더 강한 형태의 상처를 입히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합니다.

범석을 보면서 저는 단순히 그를 비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안에 있던 건 악의가 아니라 열등감이었기 때문입니다. 열등감이란 자신이 타인보다 부족하다는 느낌에서 비롯된 심리적 불안 상태로, 이것이 해소되지 않으면 공격성으로 전환되기 쉽습니다. 범석은 수호처럼 강해지거나 시은처럼 똑똑해지는 대신, 그들을 끌어내리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직면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죠.

이 드라마가 학교폭력을 다룬 콘텐츠 중에서도 무겁게 남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범석이 특별한 악인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지극히 평범한 인간의 가장 약한 지점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현실에서도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약한 사람에게만 강하게 구는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넘치는 자신감보다는 채워지지 않는 결핍이 더 자주 보입니다.

범석의 서사가 불편하게 남는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피해 경험이 자동으로 선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 연대와 따뜻함을 받아도 내면의 열등감이 해소되지 않으면 배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
  • 폭력의 연쇄를 끊으려면 구원자의 존재보다 자기 자신과의 직면이 먼저라는 것

국내 학교폭력 가해 경험 연구에서도 비슷한 맥락이 확인됩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학교폭력 가해 청소년의 상당수가 과거 피해 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가해 행동과 유의미한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범석의 이야기가 단순한 드라마 설정이 아니라 실제 현실의 반영이라는 점이 그래서 더 무겁습니다.

<약한영웅 Class 1>을 보고 나서 한동안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망가뜨리는 것은 결국 폭력 그 자체인가, 아니면 그 밑에 깔린 열등감인가. 저는 후자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혼자 귀마개를 꽂고 버티는 분들이 있다면, 그 독기만큼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꼭 가져가셨으면 합니다. 연시은처럼 지략으로 버텨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범석처럼 자신의 결핍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가 어쩌면 더 오래가는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참고: <약한영웅 Class 1>은 웨이브(Wavve), 넷플릭스에서 스트리밍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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