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다가 갑자기 고등학교 시절이 떠오를 줄은 몰랐거든요. 《단 하나의 사랑》은 천사와 인간의 이야기인데, 이상하게도 학창시절 교실 안에서 늘 조금 붕 떠 있던 제 모습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상처받는 게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 했던 그 시절이요.
교실 안에서도 혼자였던 감정, 드라마가 건드렸습니다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분명히 친구들 사이에 있는데, 집에 돌아오면 왜인지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드는 것. 저는 고등학교 내내 그랬습니다. 쉬는 시간에 같이 웃고 떠들었는데도 하루가 끝나면 항상 어딘가 허전했어요.
나중에 돌아보니 그 이유가 보이더라고요. 저는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게 무서워서 싫다는 말을 거의 못 했습니다. 친구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았고,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속마음을 숨긴 날이 훨씬 더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 정작 저는 어떤 사람인지 점점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태를 '자기 소외(Self-Alienation)'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자기 소외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억압하다 보니 정작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감각을 잃어버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제가 딱 그 상태였던 것 같아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감정을 계속 숨기다 보니, 나중에는 어떤 감정이 진짜 내 것인지도 헷갈렸으니까요.
드라마 속 이연서도 비슷해 보였습니다. 겉으로는 차갑고 아무것도 필요 없다는 듯 행동하지만, 사실 그건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어막이었잖아요. 저도 학창시절에 그랬습니다. 먼저 다가가는 방법을 몰라서, 조용히 주변만 맴도는 시간이 길었어요.
신의 질서, 그게 정말 선일까요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가장 불편하게 느낀 부분이 있습니다. 신이 운명을 이미 정해놓고,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장면들이었어요. 철학적으로는 이를 '결정론(Determinism)'이라고 합니다. 결정론이란 세상의 모든 사건은 이미 원인에 의해 정해져 있으며, 인간의 자유 의지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점입니다.
드라마 속 신은 바로 그 결정론적 입장에 서 있습니다. 죽을 사람은 죽어야 하고, 천사는 인간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따르라고 요구하죠.
그런데 저는 그게 납득이 잘 안 됐습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감정이 왜 벌을 받아야 하는 건지. 천사는 인간보다 더 순수하고 선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그런 존재조차 누군가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건 오히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강렬한 것인지를 증명하는 게 아닐까 싶었거든요.
드라마 속 사랑의 감정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 천사가 인간을 사랑하는 행위는 '신의 질서를 어기는 죄'로 규정된다
-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을 선택하는 행위가 벌의 대상이 된다
- 결국 드라마는 사랑의 감정이 규칙보다 강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사랑의 감정을 규칙 하나로 잘라낼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느낀 건, 사랑이 금지된다는 설정보다 사랑조차 허락받아야 하는 세계가 너무 차갑고 외롭다는 거였어요.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은 기술이며,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출처: 국립중앙도서관). 그의 관점에서 보면, 사랑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천사가 인간을 사랑하게 된 것도 결국 인간과 함께한 경험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감정 아닐까요.
사랑의 감정은 결국 어디서 오는 걸까요
제가 직접 드라마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김단이 이연서에게 "나만 봐, 세상에 딱 너랑 나 둘만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이에요. 그 대사가 이상하게 오래 남더라고요.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애착 이론이란 인간이 특정 대상과 강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려는 본능적 성향을 설명하는 심리학 이론으로, 영국의 정신과 의사 존 볼비가 체계화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어린 시절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관계에서 불안을 느끼거나 지나치게 회피적인 성향을 보이기 쉽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이연서가 사람들을 멀리하고 차갑게 구는 이유도 결국 그 맥락에서 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까워질수록 잃을 것이 생긴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처음부터 거리를 두는 거잖아요. 저도 학창시절에 비슷한 방어 기제를 썼던 것 같아서 그 부분이 유독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드라마가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하나인 것 같습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받는 것을 스스로 허락하느냐의 문제라는 것. 이연서도, 고등학교 시절의 저도, 결국 가장 어려웠던 건 먼저 다가가는 게 아니라 다가오는 손을 잡는 것이었으니까요.
《단 하나의 사랑》은 판타지 드라마지만, 그 안에서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천사와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드라마를 다 본 후 한동안은 학창시절이 생각났어요. 조금 더 일찍 솔직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고요. 이 드라마가 단순히 로맨스 판타지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아마 그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