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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프렌즈 (부모님 이해, 죽음 회피, 황혼 청춘)

by dailyinfo-lab 2026. 6. 10.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드라마 한 편을 보고 나서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디어 마이 프렌즈》는 나이 든 인물들이 주인공인 드라마인데, 보다 보면 어느 순간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이야기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부모님을 바라보는 시선, 죽음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질문이 자꾸만 따라붙었습니다.

부모님도 처음부터 어른이었던 건 아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부모님을 '부모님'이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는 순간은 꽤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 저는 꽤 오랫동안 부모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믿었습니다. 실패를 경험하거나 불안해하는 모습은 제 상상 안에 없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일방적인 시선이었는지는 한참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디어 마이 프렌즈》의 인물들은 후회를 안고 살아가고, 외로움을 느끼고, 여전히 상처받습니다. 드라마 심리학 측면에서 이런 서사를 분석하면, 이른바 '탈이상화(de-idealization)' 과정이 작동합니다. 탈이상화란 특정 대상을 완벽하거나 전능하다고 인식하던 상태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심리적 과정을 의미합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이 과정이 부모님에 대한 제 인식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부모님도 처음 사회에 나갔을 때가 있었고, 처음 실패했던 날이 있었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조차 배워가는 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드라마 속 노인들이 아직도 꿈을 꾸고 다투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실이 처음으로 실감 있게 다가왔습니다.

죽음을 외면하면 삶도 흐릿해진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가장 불편하게 마주한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왜 우리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을 이렇게 피할까?"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공론화하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실제로 웰다잉(well-dying) 문화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의 사전돌봄계획(ACP, Advance Care Planning) 작성률은 선진국 대비 현저히 낮은 수준입니다. 사전돌봄계획이란 본인이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 자신의 의료 처치 방향을 미리 정해두는 문서를 말합니다. 이것조차 꺼림칙하게 여기는 정서가 여전히 강하다는 뜻입니다(출처: 국가생명윤리정책원).

드라마 속 인물들은 영정사진을 재미 삼아 찍고, 죽음을 농담처럼 꺼냅니다. 처음엔 그 장면이 낯설었는데, 보다 보니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운 태도 아닐까 싶어졌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죽음을 입 밖에 꺼내는 것을 금기시할수록, 정작 해야 할 이야기들이 뒤로 밀립니다. 하고 싶은 말도, 용서도, 감사도 전부 "언젠가"로 미뤄집니다.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삶을 포기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유한성을 인식할 때, 지금 이 순간과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황혼 청춘이라는 단어가 새롭게 들린 이유

'황혼 청춘'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노년기의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긍정적 노년(positive aging) 담론에서 자주 등장합니다. 긍정적 노년이란 노화를 단순한 쇠퇴로 보지 않고, 삶의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을 의미합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세계 일주를 꿈꾸고, 예술 전시를 준비하고, 오래된 친구와 싸우고 또 화해합니다. 제가 직접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나이 든 여성이 자신의 그림이 미국 전시 제안을 받자 "내껀 내가 내다 파는데 문제 있냐"고 말하는 대목이었습니다. 그 한 문장에 온 삶의 자존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노인의 심리적 자율성과 삶의 만족도 간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들에 따르면, 자기결정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높을수록 주관적 웰빙 지수도 높게 나타납니다(출처: 한국노인학회). 나이가 든다는 것이 선택권을 잃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선택을 이어가는 과정이라는 뜻입니다.

드라마가 보여주는 황혼 청춘들은 아래와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 이루지 못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방향을 바꿔 이어간다
  • 갈등을 회피하지 않고 직접 부딪힌다
  • 죽음을 인식하면서도 오늘을 기꺼이 살아낸다

이 세 가지를 보면, 꼭 노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라는 감각, 이걸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시한부." 처음엔 그냥 흘려들었는데, 곰씹을수록 무거워졌습니다. 시한부(terminal prognosis)는 의학 용어로, 질병이나 노화로 인해 예측 가능한 시간 안에 사망에 이를 것으로 진단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드라마는 이 단어를 의료 개념으로 쓴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실상 시한부라는 철학적 감각으로 사용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 감각은 공포보다 집중력을 만들어냅니다. 언젠가 끝이 온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지금 무엇에 시간을 쓰고 있는지를 다르게 바라보게 됩니다. 드라마 속 인물이 "지나고 나서 후회 말고 살아 있는 이 순간에 감사하라"고 말하는 장면은, 종교적 위로가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진술처럼 들렸습니다.

존재론적 인식(existential awareness), 즉 자신의 유한성을 명확히 인식하는 태도는 오히려 삶의 동기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볼 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감각이 선명해집니다.

《디어 마이 프렌즈》를 보고 나서 저는 부모님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고, 죽음이라는 단어를 조금 덜 피하게 되었습니다. 드라마 한 편이 가진 힘이 이런 것이라면, 꽤 강한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못 보신 분이라면 한 번쯤 시간 내어 보시길 권합니다. 보다 보면 부모님 생각이 날 겁니다. 그리고 아마 전화기를 들게 될 겁니다.


참고: https://youtu.be/g9ewolN2U7A?si=9amV62Tgb-3TJW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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