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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이 남긴 질문 (첫 출근, 버팀의 의미, 미생)

by dailyinfo-lab 2026. 5. 30.

버티는 것이 정말 정답일까요? 드라마 《미생》을 보고 나서 저는 오히려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장그래가 회사에서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달린 이야기는 분명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버팀이라는 단어가 항상 미덕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첫 출근, 내가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몰랐던 날들

처음 병원에 출근하던 날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새하얀 가운을 입고 복도를 걷는데 발이 바닥에 제대로 붙질 않았습니다. 학생 때 임상 실습(Clinical Practice)은 여러 차례 해봤습니다. 여기서 임상 실습이란 정해진 커리큘럼 안에서 선배 의료진의 감독 아래 환자를 경험하는 교육 과정으로, 책임 없이 배울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런데 정식 직원이 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책임의 무게가 실렸습니다.

병원은 생각보다 훨씬 빠른 곳이었습니다. 환자 유동률(Patient Turnover)이 높았고, 여기서 환자 유동률이란 일정 시간 내에 처리되는 환자 수의 흐름을 뜻하는데, 쉽게 말해 대기실이 한 번도 비지 않는 상태라고 보면 됩니다. 선배들은 말이 없어도 각자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반면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장비 위치도 헷갈렸고, 어떤 프로토콜(Protocol)로 환자를 안내해야 하는지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프로토콜이란 특정 상황에서 따라야 하는 표준 처리 절차를 말합니다. 선배들이 몸에 익혀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그 절차가, 저에게는 외워야 할 낯선 규칙이었습니다.

어느 날은 환자 이름을 잘못 불러서 선배에게 지적을 받았습니다. 큰 실수는 아니었지만 그날 퇴근길 내내 그 장면만 머릿속에 재생됐습니다. '나는 이 일에 안 맞는 걸까.' 제 경험상 이건 단순한 자기 의심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이 공간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 즉 소속감 결여(Sense of Belonging Deficit)에 가까웠습니다. 이 개념은 직장 내 심리적 안전감 연구에서 자주 다뤄지는데, 쉽게 설명하면 '나는 여기 있어도 괜찮은 사람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미생》 속 장그래가 느꼈던 것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일을 못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내가 이곳에 있어도 되는 사람인지를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그게 더 괴로운 법입니다.

이 시기에 저를 변화시킨 건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신입 직원이 저에게 장비 사용법을 물어봤습니다. 얼마 전까지 제가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누군가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날 퇴근길에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저도 조금은 이곳 사람이 되었구나.'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느끼는 적응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며 공감했던 장면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업무 매뉴얼을 무시했다고 지적받는 장면: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배우는 과정
  • 팔 물건을 갖고 바이어에게 사인을 받아오라는 장면: 실전 경험이 없는 신입이 마주하는 첫 번째 실패의 예고
  • 양말과 팬티를 사우나 앞에서 파는 장면: 누구한테 뭘 팔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배우는 가장 직접적인 교육

직장 내 적응 과정에서 소속감이 직무 만족도와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확인된 바 있습니다(출처: 한국직업능력연구원). 신입 직원일수록 이 초기 소속감의 형성이 장기 근속 여부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버팀의 의미, 그리고 떠나는 것도 용기라는 생각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감정이었습니다. 《미생》을 보면서 위로를 받을 줄 알았는데, 한편으로는 답답함도 함께 올라왔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은 상사에게 혼나고, 억울한 일을 겪고, 계약직이라는 이유로 기회를 빼앗기면서도 다시 출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왜 우리는 버티는 것만 정답처럼 이야기할까.

직장 내 번아웃(Burnout)은 세계보건기구(WHO)가 2019년에 공식 직업적 현상으로 등재한 개념입니다. 번아웃이란 만성적인 업무 스트레스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발생하는 에너지 소진, 직무에 대한 냉소적 태도, 업무 효능감 저하의 상태를 말합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 WHO). 이게 왜 중요하냐면, 버티는 것이 언제나 성장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버팀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만, 어떤 버팀은 사람을 조용히 무너뜨립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병원에서 일하던 초반에 저도 분명 버텼습니다. 그리고 그 버팀이 의미 있었던 이유는 배우고 있다는 감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조금씩 낯선 것이 익숙해지는 체험, 그게 버팀을 지속시키는 에너지였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 감각이 사라졌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저는 '버텨야 한다'는 말이 압박이 되었을 것입니다.

《미생》에서 장그래가 끝까지 자리를 지킨 것은 그가 특별히 강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왜 버티고 있는지를 어느 순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오차장이 말했던 "버티는 게 이기는 거야"라는 대사도 맥락을 빼면 오해가 생깁니다. 그 버팀은 무조건 참으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지 말라는 말에 가까웠습니다.

만약 장그래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면 실패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제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때로는 버티는 것보다 떠나는 결정이 더 큰 용기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이유 없이 버티는 것, 이유를 잃어버린 채로 매일 출근하는 것은 성장이 아닐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버텼는지가 아니라, 지금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스스로 알고 있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학창시절부터 우리는 힘들면 참고, 맞지 않아도 견디고, 불안해도 노력하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묻지 않는 버팀을 미덕처럼 포장하는 분위기가 여전히 있습니다. 그래서 지쳐서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습니다. 드라마는 버텨낸 사람을 비춥니다. 하지만 현실에는 버티다가 조용히 사라진 사람들도 분명 있습니다.

《미생》은 저에게 위로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질문을 던진 드라마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지금 왜 버티고 있는가.

드라마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직장인으로서의 공감을 넘어 자신의 선택과 이유를 다시 들여다보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보신 분이라면 단순히 '장그래처럼 버텨야지'보다, 그가 무엇을 위해 버텼는지를 다시 생각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어쩌면 그 답이 지금의 저와 여러분에게도 유효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youtu.be/Mhs73xQWo5g?si=eKnbqKUGjmdPxB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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