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된다"는 말에 주저앉은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그때 우연히 틀었던 드라마가 <김과장>이었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웃으면서 보다가 어느 순간 멍하니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으니까요. 양아치 경리과장이 대기업 비리를 박살 내는 이야기가 왜 이토록 위로가 되는지, 그 이유를 이 글에서 풀어보려 합니다.
양아치가 의인이 되는 역설, 어디서 오는 카타르시스인가
주인공 김성룡(남궁민 분)은 처음부터 영웅이 아닙니다. 지방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며 몰래 돈을 빼돌리는, 이른바 '횡령 전문가'입니다. 횡령이란 자신이 보관하는 타인의 재물을 불법으로 가로채는 범죄 행위를 말합니다. 드라마는 이 불법의 귀재가 대기업 'TQ그룹' 경리과장으로 입사하면서 시작되는데, 그의 목표는 정의 구현이 아니라 단 하나, 삥땅 쳐서 덴마크로 이민 가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드라마를 처음 봤을 때, 이 설정이 도리어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완벽한 도덕군자가 나쁜 놈을 혼내주는 구조는 어딘가 공허하잖아요. 하지만 제 손도 더러운 사람이 더 더러운 세계에 뛰어들어 싸우는 구조는 다릅니다. "나도 완벽하지 않지만, 저 놈들은 정말 선을 넘었다"는 감각. 그게 시청자에게 훨씬 강하게 꽂힙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단순한 오락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분식회계(粉飾會計)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분식회계란 기업이 실제보다 이익을 부풀리거나 손실을 숨기기 위해 재무제표를 조작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실제로 국내 기업 비리의 상당수가 이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김과장이 회사의 비밀 장부를 들이밀며 임원들을 압박하는 장면이 그토록 통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뉴스에서 수없이 봐온 바로 그 현실을 정확히 짚어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2019년 법 시행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으며, 많은 근로자들이 부당한 지시나 갑질을 경험하고도 신고를 망설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고용노동부). 김과장이 기죽지 않고 맞받아치는 장면에 직장인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숫자로도 증명되는 셈입니다.
드라마 속 TQ그룹이 일삼는 갑질의 핵심 수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분식회계를 통한 실적 조작 및 투자자 기만
- 경영 위기를 명목으로 한 부당 해고 및 임금 체불
- 내부 고발자를 표적으로 삼는 조직적 괴롭힘
- 직급과 법적 지위를 이용한 약자 압박
이 목록을 보고 "어, 이거 우리 회사 얘기 아닌가?" 싶은 분이 계신다면, 그게 바로 이 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일 것입니다.
'안 된다'는 말 앞에서 오기가 생기는 것, 그게 살아있다는 증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주변에서 "쉽지 않을 텐데", "안정적인 길이 더 낫지 않겠어?"라는 말을 들을 때, 저는 주저앉기보다 이상하게 반발심이 먼저 올라왔습니다. 그게 오기인지 객기인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오기가 결국 저를 계속 움직이게 했습니다.
드라마 속 김과장의 저항 방식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내부 고발(Whistleblowing)입니다. 내부 고발이란 조직 내부의 불법 행위나 비윤리적 행위를 외부에 알리는 행위를 뜻하는데, 현실에서는 보복이 두렵거나 생계가 걸려 있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침묵을 선택합니다. 김과장이 거대 기업 앞에서 망설임 없이 비밀 장부를 꺼내드는 장면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도 짜릿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실에서 우리가 차마 하지 못하는 일을 그가 대신 해주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 드라마가 단순히 "저 사람처럼 싸워라"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싸우지 못하는 현실이 얼마나 구조적으로 문제인가"를 꼬집는 쪽에 가깝습니다.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공익 신고자의 상당수가 신고 이후 불이익을 경험한다고 응답했으며, 이는 내부 고발을 가로막는 현실적 장벽이 여전히 높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출처: 국민권익위원회).
결국 우리가 김과장에게 열광하는 것은 그가 영웅이라서가 아닙니다. 그는 겁도 없고 손도 더럽고, 처음에는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순간에 버팀목이 돼주는 사람. 그 모습이 우리가 갖고 싶은 용기의 형태와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가 있습니다. "바위는 아무리 단단해도 죽은 거고, 계란은 아무리 깨져도 살아있는 거예요." 저는 이 대사를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좀 울컥했습니다. 당시 제가 딱 그 계란의 상태였거든요. 깨질 것 같으면서도 아직 살아있는.
지금 당장 승리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싸우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김과장>은 그 사실을 웃기고 통쾌하게, 그러면서도 묵직하게 다시 일깨워주는 드라마입니다. 아직 자신의 판을 찾지 못한 분들이라면, 이번 주말 첫 화를 틀어보시길 권합니다. 넷플릭스와 티빙에서 전 회차를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 🎬 [사이다 특집 ①] 드라마 정보 작품명: 김과장 (Good Manager) 출연: 남궁민, 남상미, 이준호 등 OTT: 넷플릭스 / 티빙에서 시청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