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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아홉 (시간의 유한성, 시한부, 삶의 의미)

by dailyinfo-lab 2026. 6. 1.

솔직히 이 드라마를 처음 틀었을 때는 그냥 흔한 로맨스물이겠거니 했습니다. 주인공들이 설레는 눈빛을 교환하고, 어른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드라마 정도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찬영이 시한부 판정을 받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묵직했습니다.

당연하다고 믿었던 시간에 대하여

여러분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내일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중학교 시절 매일 얼굴을 보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같은 교실, 같은 급식, 같은 하굣길. 그 친구와 다퉜던 날도 별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내일 또 보면 되니까요. 그런데 졸업 후 각자의 길을 가고 나서는 연락이 점점 끊겼고, 어느 순간 이름은 기억나는데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는 걸 몸으로 느꼈습니다.

《서른, 아홉》의 세 친구 미조, 찬영, 주는 20년째 서로를 가족처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이들의 관계를 보면서 저는 계속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저런 사람이 곁에 있는가, 그리고 그 사람에게 충분히 표현하며 살고 있는가.

드라마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찬영이 시한부 판정을 받은 직후의 태도였습니다. 항암 치료를 거부하면서 "병실에만 있다가 죽기 싫다"고 말하는 장면은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하나의 선언처럼 들렸습니다. 여기서 항암 치료(Anti-cancer therapy)란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기 위해 약물·방사선 등을 사용하는 치료 과정을 의미합니다.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의학적 선택이지만, 극심한 부작용이 동반되는 만큼 환자 본인의 삶의 질과 맞교환되는 결정이기도 합니다. 찬영은 그 맞교환에서 치료보다 삶의 밀도를 선택한 것이죠.

제가 이 장면에서 예상 밖이었던 건, 이 드라마가 시한부를 비극의 소재로만 쓰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오히려 "지구에서 제일 신나는 시한부가 되어보자"는 친구들의 다짐이 나옵니다. 이를 보면서 저는 오히려 씁쓸했습니다. 왜 사람은 마감이 생겨야만 지금 이 순간을 귀하게 여기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망 현저성(Mortality Salienc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사망 현저성이란 자신이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인식하게 될 때 행동과 태도가 변화하는 심리적 현상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죽음을 떠올려야 비로소 삶에 집중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인식이 활성화될 때 사람들은 가까운 인간관계를 더 소중히 여기고, 현재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높아집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찬영 외에도 미조와 진석의 관계, 그리고 선우와 미조의 관계는 각자의 방식으로 '지금 이 순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미조가 고백을 받고도 자꾸 거리를 두려는 모습, 진석이 찬영을 사랑하면서도 몇 년째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모습. 이 인물들이 답답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사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서른, 아홉》이 건드리는 감정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당연하게 여겼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 순간
  • 하지 못한 말을 나중으로 미뤘을 때 찾아오는 후회
  • 사랑받고 싶으면서도 상처받지 않으려 스스로 벽을 치는 심리
  • 죽음이라는 현실이 오히려 관계를 더 선명하게 만드는 역설

남은 시간을 안다면 정말 더 잘 살 수 있을까

드라마를 보면서 저에게 가장 오래 남은 의문은 이것이었습니다. 남은 시간이 정해져 있다면 사람은 정말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그럴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마감이 생기면 집중하게 되니까요. 실제로 저도 마감 직전에 가장 집중해서 일하는 편이라 그 논리가 와닿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는 전혀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자신의 남은 수명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어떻게 될까요? 제 경험상 이건 단순히 "더 열심히 살게 될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정보가 거대한 불평등과 혼란의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지원자의 기대 수명을 참고하려 할 수 있습니다. 보험업계에서는 수명 정보를 보험료 산정의 핵심 변수로 활용하려 할 것입니다. 보험료 산정의 핵심 변수란 보험회사가 위험도를 평가하고 고객별 요금을 계산하는 데 사용하는 기준 지표를 뜻합니다. 수명이 짧은 사람일수록 더 높은 보험료를 내거나 아예 가입 자체가 거부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관계 역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보다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를 먼저 계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삶이 살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계산의 대상이 되는 것이죠. 이 부분이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가장 두려웠던 지점입니다.

의학 윤리(Bioethics) 분야에서도 이 문제는 오랫동안 논쟁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의학 윤리란 의료 행위와 연구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쟁점들을 다루는 학문 분야로, 환자의 자율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핵심 가치로 삼습니다. 예측 의학(Predictive Medicine)의 발달로 유전 정보나 생체 데이터를 통해 특정 질환의 발병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정보의 활용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는 현재도 진행 중인 논쟁입니다(출처: 한국의료윤리학회).

예측 의학이란 개인의 유전자, 생활습관, 환경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 질병을 미리 파악하는 의학 접근법을 의미합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고 난 뒤 이런 결론에 가까워졌습니다. 사람이 현재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이유는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라, 끝이 없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요. 그리고 그 착각이 깨지는 순간, 즉 찬영처럼 실제로 끝을 마주하는 순간, 비로소 지금 이 자리의 의미가 달라집니다. 하지만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반드시 끝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끝을 모르기 때문에 오늘을 온전히 살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서른, 아홉》을 다 보고 나서 저는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딱히 용건이 있는 건 아니었고, 그냥 잘 지내냐고요. 드라마 한 편이 만들어 준 행동이었습니다.

이 드라마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로맨스만 기대하고 보시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이 남을 겁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하지 못한 말이 있다면, 그 말을 언제까지 미룰 수 있는지도 한번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다음에 하면 된다는 말이 언제까지 유효한지는 아무도 모르니까요.


참고: https://youtu.be/raxXGMd3rjE?si=s2Lg_bUfRZ8x6_W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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