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잘하는 한 명이 있으면 팀이 이길 수 있을까요. 저는 고등학교 때 조별과제를 하면서 처음으로 이 질문이 얼마나 틀린 전제인지를 몸으로 겪었습니다. 발표 당일 점수표를 받아들고서야 알았습니다. 준비를 "한 것"과 "잘 한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사실을.
팀 케미스트리 — 한 명의 천재보다 하나의 팀
스토브리그에서 백승수 단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팀 내 최고 스타를 내보내는 결정이었습니다. 국가대표 4번 타자 임동규는 기록만 보면 흠잡을 데 없는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백 단장은 그를 트레이드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직원들이 반발하자 그는 데이터를 꺼냈습니다. 임동규의 결승타 순위는 팀 내 3위. 득점권 타율과 승부처 타율의 격차가 컸고, 리그 순위가 결정되는 여름에 유독 힘을 못 냈습니다. 여기서 결승타(RBI, Run Batted In)란 주자를 불러들여 실제 득점으로 연결한 타수를 의미합니다. 단순 타율보다 실제 팀 승리 기여도를 보여주는 수치입니다.
그리고 백 단장이 가장 강하게 지적한 건 임동규의 인성이었습니다. 2년 전 팀을 떠난 강두기 선수가 이적 후 리그 최고의 에이스로 성장한 사실을 그는 꿰뚫고 있었습니다. 강두기를 떠나게 만든 원인이 임동규의 태도였다는 것도. 이는 팀 케미스트리(Team Chemistry)의 핵심을 건드리는 지점입니다. 팀 케미스트리란 구성원 개개인의 능력이 합산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신뢰와 조화로 팀 전체의 시너지가 극대화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제가 조별과제를 하면서 비슷한 상황을 겪은 기억이 있습니다. 발표 준비를 열심히 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자기 방식만 고집하면서 다른 친구들의 의견이 묵살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팀 전체의 발표보다 그 한 사람의 발표가 되어버렸습니다. 점수가 낮게 나왔을 때 저는 제가 부족했던 탓만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팀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였습니다.
백 단장의 PT가 설득력을 얻은 이유는 단순한 팩트 나열이 아니었습니다. 팀이 왜 망가졌는지, 그 구조를 짚었기 때문입니다.
프랜차이즈 — 썩은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결과도 바뀌지 않는다
임동규 트레이드 이후 백 단장의 다음 타깃은 스카우트 비리였습니다. 스카우트 팀장 고세혁은 55명의 신인 선수 중 15명을 자신의 출신 학교, 선배, 산악회 인맥으로만 채워왔습니다. 출신과 인맥으로 선수를 선발하고, 뒷돈까지 받는 구조였습니다.
여기서 드래프트(Draft)란 프로구단이 아마추어 선수를 지명하여 계약을 맺는 공식 선발 절차입니다. 공정한 실력 평가가 기본 전제인데, 고세혁 팀장은 이 절차를 개인 인맥의 통로로 써왔습니다. 프랜차이즈 팀의 근간이 되어야 할 선수 수급 시스템이 처음부터 오염된 셈입니다.
프랜차이즈 스타(Franchise Star)란 한 팀을 대표하며 팬들의 충성도를 이끌어내는 상징적 선수를 말합니다. 드림즈에게는 임동규가 그런 존재였지만, 백 단장은 프랜차이즈 스타의 자리를 강두기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채웠습니다. 스타 한 명에 의존하는 구조가 아니라, 팀 전체가 균형을 갖추는 방향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구조 문제는 눈에 잘 안 보입니다. 조별과제를 할 때도 결과가 나쁘면 발표를 맡은 사람이나 PPT를 만든 사람의 잘못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처음 역할을 나누는 단계에서, 주제를 정하는 단계에서 이미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드림즈의 문제도 비슷했습니다. 스카우트 단계부터 비리로 오염된 팀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조직 내 부패 구조가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서는 국내 연구들도 같은 결론을 제시합니다. 조직 투명성과 성과의 관계를 분석한 자료들을 보면, 공정한 평가 시스템이 갖춰진 조직일수록 개인 역량 이상의 집단 성과를 내는 경향이 뚜렷합니다(출처: 한국행정연구원).
드림즈의 썩은 부위를 도려내는 과정이 불편하고 시끄러웠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 없이는 어떤 영입도, 어떤 전략도 빛을 발할 수 없었을 겁니다.
조직 문화 — 사람이 바뀌어야 팀도 바뀐다
스토브리그의 후반부는 연봉 협상과 인물 대결로 채워집니다. 백 단장은 성적 기반의 제로베이스 연봉 산정 방식을 들고 나옵니다. 제로베이스(Zero-Base) 방식이란 기존 연봉을 기준점으로 삼지 않고, 지난 시즌 성과만을 근거로 금액을 새로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연공서열 중심의 구조를 깨는 시도였지만, 그만큼 저항도 컸습니다.
특히 서향주 선수와의 협상 장면은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강하게 남는 장면 중 하나입니다. 룸살롱까지 불러내며 무릎 꿇기를 요구하던 서향주에게 백 단장이 꺼낸 말은 간결했습니다. "선을 넘은 사람하고 다시 웃으면서 협상은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서향주가 먼저 고개를 숙였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단순한 사이다 서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직 문화(Organizational Culture)란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행동 방식과 가치 기준을 의미합니다. 드림즈가 4년 연속 꼴찌였던 건 선수 개개인이 나빠서가 아니라, 무례함이 용인되고 실력보다 인맥이 우선시되던 조직 문화 자체가 썩어있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변화의 포인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팀 내 권위 구조를 실력과 태도 기준으로 재편
- 비리 관행을 끊고 신뢰 기반의 채용 시스템 구축
- 연봉 협상에서 감정이 아닌 데이터와 원칙을 기준으로 제시
- 외부 인재(로버트 길) 영입 시 사회적 논란까지 감수하는 결단
이 네 가지는 단순히 야구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떤 팀이든 구조를 바꾸려면 이 순서가 필요합니다. 조직 내 공정성 확보와 성과 사이의 관계는 기업 경영 연구에서도 반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입니다(출처: 한국경영학회).
제가 고등학교 때 조별과제에서 느꼈던 미안함은,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구조에 대한 이해 부족이었습니다. 누가 리더 역할을 해야 하는지,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어떻게 조율하는지, 각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그 기준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그냥 "최대한 피해 안 끼치자"는 소극적인 태도로만 임했습니다. 백 단장이 드림즈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그 기준을 세우는 작업이었다는 게, 지금은 더 선명하게 보입니다.
스토브리그가 시청자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통쾌한 반전 때문이 아닙니다. 팀이 실패하는 진짜 이유를 너무 정확하게 짚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구조와 문화가 망가진 팀은 이길 수 없다는 것. 반대로, 구조를 바꾸고 문화를 세우면 꼴찌 팀도 한국시리즈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
조별과제든, 직장이든, 야구팀이든. 팀으로 무언가를 한다면 이 드라마는 한 번쯤 볼 가치가 있습니다. 보고 나서 주변 사람들과 "우리 팀은 어떤가"를 이야기해보는 것, 그게 스토브리그가 남긴 가장 실용적인 숙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