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이 드라마를 처음 볼 때 단순한 로맨스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역도라는 소재가 낯설었고, 주인공이 살을 빼려는 이야기가 가볍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자꾸 제 이야기가 겹쳐 보였고, 끝날 때쯤엔 생각할 거리가 꽤 많이 남았습니다.
비교가 습관이 되면 자존감이 무너진다
일반적으로 비교는 동기부여가 된다고들 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믿었습니다. 남보다 뒤처지는 게 보이면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비교가 성장의 자극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그건 어느 선까지만 맞는 말이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저는 주변 사람과 저를 끊임없이 비교했습니다. 성적, 외모, 말솜씨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고 누군가와 견줘보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처음엔 그 비교가 자극이 되는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족한 부분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잘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못하는 것만 결함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드라마 속 복주가 바로 그랬습니다. 리듬체조부와 비교당하고, 다른 역도 선수들과 기량을 견줄 때마다 자신을 작게 봤습니다. 자존감(self-esteem)이 흔들리는 장면들이 공감이 갔습니다. 여기서 자존감이란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심리적 상태를 말하는데, 외부 비교에 자주 노출될수록 이 감각이 외부 기준에 종속됩니다.
자존감과 자기효능감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들을 살펴보면, 자기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는 사회적 비교(social comparison)가 잦을수록 심리적 웰빙 지수가 낮아지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사회적 비교란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를 타인의 것과 견주어 평가하는 인지적 과정을 뜻합니다. 제가 그 구조 안에 오래 있었다는 걸 드라마를 보며 새삼 깨달았습니다.
재능과 노력, 정말 둘 중 하나가 더 중요할까
"노력하면 다 된다"는 말, 저도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 말이 항상 위로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열심히 해도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 때, 그 말은 오히려 저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습니다.
드라마에서도 이 문제는 은근히 깔려 있습니다. 같은 훈련을 해도 선수마다 성장 속도가 달랐고, 어떤 선수는 타고난 신체 조건이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관찰해 보니, 복주가 단순히 노력형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 눈에 띄었습니다. 재능이 있되 그걸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었습니다.
스포츠 심리학에서는 선수의 성취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크게 아래와 같이 구분합니다.
- 유전적 소질과 신체 조건 (생체역학적 요인)
- 훈련량과 질 (의도적 연습의 누적)
- 심리적 회복 탄력성 (멘탈 강화 훈련)
- 환경적 지원 (코치, 팀, 가족의 뒷받침)
이 중 어느 하나만으로 엘리트 성취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출처: 대한스포츠의학회). 생체역학(biomechanics)이란 신체 움직임을 물리학적으로 분석하는 학문으로, 같은 노력을 투입해도 신체 구조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해 줍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성공한 사람에게는 "노력했기 때문"이라고, 실패한 사람에게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결과만 놓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그 시선을 내면화하고 있었다는 걸 드라마를 보며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슬럼프는 실패가 아니라 성장의 신호다
복주가 갑자기 훈련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가슴이 꽉 막힌 것 같다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었는데, 저는 그 부분에서 멈칫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봤던 감각이었기 때문입니다.
번아웃(burnout)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번아웃이란 지속적인 스트레스와 과부하로 인해 감정적, 신체적, 인지적 자원이 고갈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운동선수뿐 아니라 직장인, 학생,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상태입니다. 단순한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슬럼프에 빠지면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더 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저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그 방식이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킨 경우가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 덕만 교수가 복주에게 억지로 돌아오라 하지 않고 시간을 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란 역경이나 스트레스 상황에서 심리적 균형을 되찾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은 쉬지 않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적절히 멈추고 재충전하는 과정을 통해 강화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드라마가 그 점을 꽤 솔직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속도를 믿는 것이 진짜 성장이다
드라마 막바지에 복주는 국가대표가 되고, 세계 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땁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화려하기보다 지난한 부분이 더 많습니다. 친구들과 갈등하고, 아버지 병환을 걱정하고, 짝사랑에 상처받고, 슬럼프도 겪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공 스토리는 결과만 조명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사이의 과정을 꽤 촘촘하게 보여줍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남들의 속도에 맞추려 했습니다. 친구가 취업하면 저도 서둘러야 할 것 같았고, 누군가 새로운 도전을 하면 저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쫓기듯 살았던 시간들이 결국 저를 더 잘하게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자기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이란 인간이 자율성, 유능감, 관계성이라는 세 가지 심리적 욕구가 충족될 때 내적 동기가 높아진다는 이론입니다. 즉,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하는 노력과, 내가 진짜 원해서 하는 노력은 질적으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복주가 결국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과 비교하는 것을 멈추고, 자신이 역도를 사랑한다는 이유 하나로 돌아왔을 때부터 달라졌습니다.
결국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누가 더 빠른지가 아니라 내가 왜 달리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저도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제 기준을 다시 점검해 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남의 속도로 저를 재는 일은 조금 줄었습니다. 복주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한 번쯤 처음부터 끝까지 봐보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