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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키 (열등감, 욕망, 비교)

by dailyinfo-lab 2026. 6. 1.

욕망이 사람을 망친다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런데 저는 《하이쿠키》를 보면서 정반대 질문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욕망이 없었다면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을까요? 드라마 속 인물들이 선택을 잘못한 건지, 아니면 원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건지, 그 경계가 생각보다 훨씬 흐릿했습니다.

열등감은 어디서 오는가

《하이쿠키》를 보면서 제가 처음으로 느낀 감정은 의외로 열등감이었습니다. 드라마 속 학생들이 더 좋은 성적을, 더 높은 위치를 원하며 끊임없이 경쟁하는 장면이 낯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성적 발표일이면 교실 분위기가 묘하게 달라졌습니다. 저도 솔직히 말하면 제 점수보다 옆 친구의 점수를 먼저 확인했습니다. 친한 친구가 좋은 성적을 받았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축하한다는 말을 입으로 하면서 마음 한편에서는 "왜 나는 저만큼 못 했지"라는 생각이 먼저 올라왔으니까요.

심리학에서는 이런 반응을 사회 비교 이론(Social Comparison Theory)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사회 비교 이론이란 사람이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평가할 때 절대적인 기준이 아닌 주변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판단한다는 개념입니다. 미국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1954년에 제시한 이 이론은, 인간이 비교 자체를 피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설명합니다. 드라마 속 학생들이 하이쿠키에 손을 뻗은 것도 결국 이 비교 심리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만약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면 그 성적에 만족했을 것 같습니다. 비교 대상이 있었기 때문에 괜찮은 점수도 초라하게 느껴졌고, 그 감각이 점점 습관이 됐습니다.

욕망이 집착으로 바뀌는 순간

일반적으로 욕망은 나쁜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욕망 자체보다 욕망이 어느 순간 방향을 잃는 그 순간이 더 문제였습니다.

《하이쿠키》 속 수영이 처음 하이쿠키 판매에 뛰어든 건 그저 돈 때문이었습니다. 시급 9,000원짜리 일을 하며 불판을 닦던 사람이 한 번에 수백만 원을 손에 쥐게 되는 과정은, 현실에서도 흔히 일어나는 일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습니다. 처음에는 생계를 위한 선택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레시피 자체를 손에 넣겠다는 집착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변화를 목표 전치(Goal Displacement)라고 부릅니다. 목표 전치란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 어느 순간 목적 그 자체로 뒤바뀌는 현상을 뜻합니다. 처음에는 돈이 목적이었지만 나중에는 쿠키를 지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수영의 모습이 바로 이 목표 전치의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드라마 속에서 욕망이 문제가 된 것은 욕망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욕망이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삼기 시작한 순간부터였습니다. 호수의 엄마를 위협하고, 재료를 몰래 가져다 놓으며 상대를 조종하는 장면들은 그 경계가 이미 한참 넘어섰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욕망이 집착으로 바뀌는 것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처음 동기가 정당하게 느껴질수록 점점 깊어지는 것을 눈치채기 어렵습니다.
  • 목표가 이루어질수록 더 큰 목표가 자동으로 생성되는 상승 구조가 반복됩니다.
  • 주변 사람들도 같은 욕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상하다고 느끼는 시점이 늦어집니다.

비교가 사람을 무너뜨리는 방식

저는 《하이쿠키》를 보면서 드라마가 말하고 싶은 것이 단순히 마약이나 범죄의 위험성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핵심은 비교가 일상이 된 환경에서 사람이 얼마나 쉽게 자신을 잃어버리는가에 있어 보였습니다.

드라마 속 학생들이 하이쿠키를 원한 이유는 쿠키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쿠키를 먹으면 남보다 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절대적인 실력을 원한 게 아니라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를 원했습니다. 이게 현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청소년의 학업 스트레스 주요 원인 중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절대적인 학습량이 아니라 또래와의 비교 및 경쟁 압박입니다(출처: 한국교육개발원). 성적 자체보다 내 성적이 옆 사람보다 높은지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는 구조 안에서 학생들은 끊임없이 소진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비교가 반드시 나쁜 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자극이 됩니다. 그런데 그 자극이 반복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잘하고 싶다는 마음보다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더 커졌습니다. 그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감각이었습니다. 전자는 저를 앞으로 가게 하는 힘이었고, 후자는 저를 옆만 보게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욕망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것

욕망을 아예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가끔 접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방향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욕망이 없으면 목표도 없고, 목표가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이유도 없어집니다.

《하이쿠키》에서 제가 인상 깊었던 건 민형의 장면이었습니다. 중독 후유증으로 아직 귀에서 쿠키 포장지 소리가 들린다고 하면서도 "근데 어림도 없어, 내가 이겨"라고 말하는 장면은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싸우는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욕망을 없애겠다는 게 아니라 지배당하지 않겠다는 태도였습니다.

심리학에서 자기조절(Self-Regula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자기조절이란 외부 자극이나 내면의 충동에 즉각 반응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와 가치에 맞게 행동을 조율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미국 심리학회(APA)에 따르면 자기조절 능력은 의지력처럼 선천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반복 훈련을 통해 강화될 수 있는 기술에 가깝습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드라마 속 인물들 중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욕망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욕망에 이름을 붙이고 직시한 사람이었습니다. 욕망은 불과 같습니다. 잘 다루면 앞을 밝히는 도구가 되지만, 놓쳐버리면 자신까지 태우고 맙니다.

《하이쿠키》를 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생각이 남았습니다. 욕망이 나쁜 것인지 묻는 것보다, 지금 내가 가진 욕망이 나를 앞으로 가게 하는 것인지 옆을 보게 하는 것인지 확인하는 게 더 유익한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교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어제의 저와 오늘의 저를 비교하는 것이 훨씬 덜 소진되는 방식이라는 걸 이제는 압니다.


참고: https://youtu.be/Lah3qdqRa-M?si=Q3sRbbuc3K4sIyC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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