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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들 (노력의 한계, 어른의 부재, 성장의 의미)

by dailyinfo-lab 2026. 5. 31.

영화 《허들》의 주인공은 고등학생 육상선수다. 실업팀 입단이라는 목표 하나를 붙잡고 훈련과 간병을 동시에 소화한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저는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그게 아니더군요. 이 영화는 노력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노력해도 넘기 어려운 구조에 대한 영화였습니다.

열심히 달리는데 결승선이 안 보인다는 것

육상 경기에는 퍼포먼스 지표(Performance Metric)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퍼포먼스 지표란 선수의 기록, 순위, 경기 출전 빈도 등 실력을 수치로 환산한 데이터를 말합니다. 실업팀 선발에서도 이 지표가 핵심 기준이 되는데, 영화 속 서연은 간병과 훈련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지표가 무너지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

저도 비슷한 감각을 알고 있습니다. 뭔가를 향해 달리고 있는데 숫자도, 변화도 보이지 않는 그 시간. 매일 계획을 세우고 해야 할 일을 찾아보면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이상하게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하나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은데 저만 같은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 서연이 기록 15초 74를 받아들고 서 있는 장면에서 그 감각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노력하면 반드시 결과가 따라온다고. 저도 한때 그렇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결과는 노력만으로 결정되지 않고, 타이밍과 구조와 주변 환경이 함께 맞아야 나오는 것이더군요. 서연의 기록 저하는 의지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부담의 결과였습니다.

국내 여자 육상 선수권 등록 현황을 보면, 고교 여자 육상 선수는 매년 꾸준히 배출되지만 이들이 진입할 수 있는 실업팀(실업팀이란 기업이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성인 스포츠 팀으로, 선수가 급여를 받으며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구조입니다)의 자리는 매우 제한적입니다(출처: 대한육상연맹). 경쟁은 치열한데 문은 좁으니, 기록 하나가 조금만 흔들려도 전체 진로가 흔들리는 구조인 셈입니다.

어른의 부재, 그리고 제가 가장 불편했던 장면

영화를 보면서 저를 가장 답답하게 만든 건 서연이 아니었습니다. 서연 주변의 어른들이었습니다.

보호자 법정 대리인(Legal Guardia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법정 대리인이란 미성년자를 대신해 법적 행위를 할 수 있는 성인을 뜻하며, 한국 민법상 부모나 법원이 지정한 후견인이 이에 해당합니다. 서연은 아버지가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수술 동의서에 서명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그 장면이 오래 남았습니다. 외삼촌에게 전화해서 겨우 해결하는데, 외숙모의 말은 냉정합니다. "우리 지금 그럴 처지 아니다."

라는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가족 간의 현실적인 판단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 냉정함이 가능했던 건 누군가 나서지 않아도 서연이 어떻게든 감당할 거라는 암묵적인 기대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어른들이 자리를 비웠고, 그 자리를 고등학생이 채웠습니다.

영화 속에서 어른들의 부재가 드러나는 장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버지 응급 수술 시, 미성년자 서명 불가로 외삼촌에게 연락해야 하는 상황
  • 간병인 없이 서연 혼자 병원과 훈련장을 오가는 일상
  • 재난지원금 담당 공무원의 "더 힘들어지면 오세요"라는 발언
  • 군청이 서연 대신 민정을 선택한 이유가 '홍보 스토리'였다는 사실

저는 이 목록을 보면서 서연이 강인하다는 생각보다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나이에 저걸 다 감당해야 했구나. 그게 존경보다 안타까움으로 먼저 다가왔습니다.

아동·청소년 복지 분야에서는 이를 조기 성인화(Parentification)라고 부릅니다. 조기 성인화란 미성년자가 어른이 맡아야 할 역할과 책임을 대신 수행하게 되는 현상으로, 장기적으로 심리적 소진과 자아 발달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서연의 이야기는 그 개념을 영화적 언어로 풀어낸 것처럼 보였습니다.

성장은 혼자 버티는 것일까, 함께 걷는 것일까

영화 마지막에 서연은 이어달리기에서 1등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장면에서 마음이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기록을 회복했고 팀도 이겼는데, 왜 여운이 개운하지 않은 걸까.

아마도 그건 서연의 성공이 구조의 변화 없이 이뤄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간병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실업팀 선발 방식이 바뀐 것도 아닙니다. 서연이 그냥 더 버텼습니다. 그리고 어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성장에 대해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고난을 홀로 견뎌내는 것이 진짜 성장이라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적절한 도움을 받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건강한 성장이라는 관점입니다. 저는 후자에 더 가깝습니다. 제 경험상 혼자 버텨낸 시간이 나를 강하게 만든 것은 맞지만, 그 시간 중에 누군가가 옆에 있었던 순간이 실제로 저를 앞으로 움직이게 했습니다.

《허들》이 불편하게 남는 이유는, 서연이 혼자 버텨낸 것을 영화가 아름답게 그릴수록 주변 어른들의 부재가 자연스럽게 용인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강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강함으로 포장될 때, 우리는 정작 바뀌어야 할 것을 놓치는 것 아닐까요.

《허들》은 달리기 영화이면서 동시에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저도 그 말을 믿고 싶습니다. 하지만 허들의 높이가 사람마다 다르다면, 그리고 그 높이를 결정하는 것이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구조라면, 우리는 선수의 노력을 응원하는 것과 동시에 허들의 높이를 조정하는 어른의 역할도 함께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12월 개봉 예정인 이 영화가 단순한 감동 스토리로 소비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참고: https://youtu.be/lUeW6icHT98?si=rWWU52B2Rd5SyB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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