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30 허들 (노력의 한계, 어른의 부재, 성장의 의미) 영화 《허들》의 주인공은 고등학생 육상선수다. 실업팀 입단이라는 목표 하나를 붙잡고 훈련과 간병을 동시에 소화한다. 처음 이 이야기를 접했을 때 저는 "열심히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그게 아니더군요. 이 영화는 노력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노력해도 넘기 어려운 구조에 대한 영화였습니다.열심히 달리는데 결승선이 안 보인다는 것육상 경기에는 퍼포먼스 지표(Performance Metric)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여기서 퍼포먼스 지표란 선수의 기록, 순위, 경기 출전 빈도 등 실력을 수치로 환산한 데이터를 말합니다. 실업팀 선발에서도 이 지표가 핵심 기준이 되는데, 영화 속 서연은 간병과 훈련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지표가 무너지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했습니다.저도 비슷한 감각.. 2026. 5. 31. 코코 리뷰 (망각의 공포, 추억의 역설, 기억과 존재) 솔직히 처음 코코를 틀었을 때는 그냥 아이들 애니메이션이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엔딩 장면이 끝나고 나서 한참 동안 화면을 멍하니 바라봤습니다. 이 영화가 건드린 건 단순한 가족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기억한다는 것이 곧 존재한다는 것이라는, 꽤 묵직한 명제였습니다.망각의 공포 — 두 번 죽는다는 것의 의미코코가 다른 애니메이션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그리는 방식에 있습니다. 픽사(Pixar)는 이 영화에서 사자(死者)의 땅에서도 또 한 번 소멸이 일어난다는 설정을 도입했습니다. 산 자의 세계에서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않게 되는 순간, 사자의 땅에서도 영구히 사라지는 것입니다.영화계에서는 이를 '이중 소멸(Double Oblivion)' 구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중 소멸이란, .. 2026. 5. 31. 인사이드 아웃 (기억 구슬, 슬픔의 역할, 감정 성장) 어릴 때 정말 좋아했던 장난감을 언제부터 찾지 않게 됐는지 기억하시나요? 저도 그런 장난감이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그게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인사이드 아웃》을 보다가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올랐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제 안에 쌓인 기억과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사라지는 기억 구슬, 그리고 잊혀진 장난감《인사이드 아웃》에는 기억 인출(memory retrieval)이라는 개념이 시각적으로 등장합니다. 기억 인출이란 과거에 저장된 경험을 현재 의식으로 불러오는 심리적 과정을 말합니다. 영화에서는 이 과정을 색깔 있는 구슬로 표현하는데, 자주 떠올리지 않는 기억은 구슬이 흐릿해지다가 결국 기억 쓰레기.. 2026. 5. 31. 미생이 남긴 질문 (첫 출근, 버팀의 의미, 미생) 버티는 것이 정말 정답일까요? 드라마 《미생》을 보고 나서 저는 오히려 이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장그래가 회사에서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달린 이야기는 분명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접 겪어보니, 버팀이라는 단어가 항상 미덕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첫 출근, 내가 이곳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몰랐던 날들처음 병원에 출근하던 날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새하얀 가운을 입고 복도를 걷는데 발이 바닥에 제대로 붙질 않았습니다. 학생 때 임상 실습(Clinical Practice)은 여러 차례 해봤습니다. 여기서 임상 실습이란 정해진 커리큘럼 안에서 선배 의료진의 감독 아래 환자를 경험하는 교육 과정으로, 책임 없이 배울 수 있는 환경입니다. 그런데 정식 직원이 된다는 것은 완.. 2026. 5. 30. 눈이 부시게 (현재 행복, 회고 편향, 그리움)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울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눈이 부시게》 마지막 회를 보다가 멈칫했습니다. 한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한 사람의 이야기가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순간, 왜인지 고등학교 1학년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빨리 지나갔으면 했던 그 날들이, 지금은 가장 그리운 시간이 되어 있었습니다.지금 이 순간이 행복인지 우리는 알고 있을까당신은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고 느끼고 계십니까?저는 고등학교 1학년 내내 그 질문을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시험이 싫었고, 수행평가가 지겨웠고, 매일 같은 시간에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일이 너무나 따분하게 느껴졌습니다. "얼른 졸업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그런데 졸업 후 몇 년이 지나 집을 정리하다가 졸업앨범을.. 2026. 5. 30. 모범택시 시리즈 (방관, 사적 제재, 법의 한계)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저는 《모범택시》 3까지 보고 다시 시즌 1과 2를 몰아보면서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 속 이야기가 단순히 통쾌한 복수극으로 끝나지 않고, 중학교 시절 제가 외면했던 한 친구의 얼굴을 계속 불러왔기 때문입니다.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 시절중학교 때 저희 반에는 유독 한 친구를 집중적으로 놀리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들 가벼운 장난이라고 생각했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군가의 실수를 웃음거리로 삼거나, 별명을 큰 소리로 부르는 정도였으니까요.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상한 걸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놀림의 대상은 늘 같은 친구였고, 급식 시간에 일부러 그 친구 옆자리를 피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그 친구는 .. 2026. 5. 29. 이전 1 2 3 4 5 다음